[조선일보]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띄운 현대모비스, 2029년 현대차·기아 첫 탑재
한국은 자동차와 메모리 반도체 모두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강국이다. 하지만 정작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기아가 사들이는 차량용 반도체의 95%는 외국산이다. 2021년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 당시에는 높은 해외 의존도가 발목을 잡으면서 자동차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겠다며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도전장을 낸 곳이 세계 6위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모비스다. 기존 가전·모바일용 반도체 업체와 팹리스(설계), 파운드리(위탁생산) 등 국내 기업들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고, 현대차·기아의 구매 수요와 연결하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플랫폼’(ASK)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21일 경기 성남시 한 호텔에서 제2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 ‘오토 세미콘 코리아(ASK)’를 열고 지난 1년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관계자 9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ASK)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현대모비스
◇국산 반도체 13종 개발 착수…2029년 첫 탑재
이날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첫 포럼 이후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19건의 협력 과제를 발굴하고, 13종 과제에 실제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중 9종의 경우 실제 적용할 현대차·기아 차종까지 선정했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부터 해당 반도체를 장착한 제어기가 차량 개발 초기 실험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간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걸림돌은 높은 진입장벽과 낮은 사업성이었다. 인명과 직결되는 만큼 엄격한 안전·품질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라 수익성 확보도 어려웠다. 반면 자동차가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하면서 반도체가 자동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전자업계의 기존 반도체 기술을 자동차용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다. 1차 협력사이자 반도체 설계업체인 현대모비스가 자동차에 필요한 성능·품질 기준을 제시하고 실제 차량 탑재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지난 1년 간 가시적 협력 성과도 거뒀다. 어보브반도체가 기존에 세탁기 등에 활용하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차량용 통신·제어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글로벌테크놀로지는 TV 디스플레이 구동 기술을 차량용으로 전환하고, 뉴라텍·LX세미콘은 차량용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무선통신 칩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도 지난해부터 자동차 내부 전자장치 간 데이터 통신을 담당하는 네트워크 반도체를 공동 개발, 현재 시제품을 평가하고 있다.
◇협력범위 확대…SK와 전력반도체 협력
현대모비스는 기존 네트워크 반도체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고성능 시스템반도체(SoC)로 개발 영역을 확대한다. SoC는 자동차의 여러 기능을 통합해 제어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박철홍 현대모비스 반도체사업담당 전무는 “현대차 차세대 아키텍처에 최적화된 SoC 개발을 추진한다”며 “2030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각 분야별 업체와 협력을 도모 중”이라고 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을 로봇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대모비스가 사업화를 추진 중인 로봇 액추에이터(관절 구동장치)에 필요한 모터구동·전원관리 반도체가 대상이다.
부족하다고 평가받아 온 전력반도체용 연구개발(R&D) 생산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는 이날 SK키파운드리, 중소 팹리스 4곳, 지원기관 4곳과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차량용 반도체에 많이 쓰이는 8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이 정체되지 않도록, 민관 합작 공공 차량용 반도체 생산시설(팹) 운영도 정부에 제안했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 포럼의 요청을 수렴해, 충남 천안에 차량용 반도체 종합지원센터를 2027년 6월 완공 목표로 구축 중이다.
한편 이날 산업부와 현대차·현대모비스·LG전자 등 24개 기업·기관이 참여하는 ‘차량용 반도체 원팀 TF’도 출범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검증·양산에 이르는 협력체계를 강화해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자립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